[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올 한해 개봉을 앞둔 한국 대작영화 라인업이 쟁쟁하다. 지난 연말 개봉 후 18일 동안 박스오피스 1위(6일 기준)를 지킨 ‘백두산’의 총 제작비는 300억 원으로 손익분기점만 730만 명에 달했다. 개봉을 앞둔 대작들의 제작비 역시 만만치 않다. ‘100억’을 들인 작품으로는 더 이상 대작에 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200~300억 원의 대작 한국영화만 무려 5~6편에 달한다.

■‘남산의 부장들’ ‘승리호’, 시대영화부터 우주까지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쇼박스 제공.

먼저 설 연휴인 오는 22일 개봉하는 ‘남산의 부장들’은 순제작비 170억 원,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총 제작비 200억 원 가량이다.

영화는 1979년 중앙정보부장(이병헌)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보다 현실감 넘치는 영화를 위해 당시 시대상을 구현한 대형 세트와 미국, 프랑스 등에서 진행한 해외 로케이션 촬영에 제작비가 투입됐다.

송중기의 복귀작 ‘승리호’ 역시 총 제작비 260억 원이 투입됐다. ‘늑대소년’(2012)으로 인연을 맺은 조성희 감독과 송중기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지구 멸망의 위기가 다가오면서 우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신과함께’ 시리즈로 유명한 VFX회사 덱스터 스튜디오와 약 27억 원 규모로 VFX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총제작비 230억원 규모의 류승완 감독의 ‘탈출: 모가디슈’는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으로 고립된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의 목숨을 건 탈출 실화를 그린다.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등이 캐스팅돼 모로코에서 촬영 중이다.

강제규 감독의 복귀작 ‘1947, 보스턴’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열린 첫 국제마라톤대회인 보스턴국제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하정우, 임시완 등이 캐스팅됐다. 제작비 200억 원 안팎에 이를 전망이다.

연상호 감독과 강동원이 의기투합한 영화 ‘반도’는 ‘부산행’의 4년 후를 상상한 좀비 이야기를 그린다. 한재림 감독의 비행기 재난영화 ‘비상선언’ 등도 순 제작비 150억 원, 총 제작비 200억 원에 달한다. 비상사태를 선언한 비행기 안이 무대이며 ‘JSA 공동경비구역’ ‘놈놈놈’ ‘밀정’으로 호흡을 맞춘 송강호?이병헌이 재회했다.

■ ‘영웅’ ‘서복’ ‘교섭’, 독립투사·복제인간..다양한 소재

영화 '영웅' 스틸./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윤제균 감독의 첫 뮤지컬 영화 ‘영웅’은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독립투사 안중근의 중근(1879~1910) 서거 110주년을 맞아 제작한 영화로 그의 마지막 1년을 그린다. 총 제작비 17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2009년 뮤지컬 초연부터 안중근 역을 맡은 정성화가 영화 주연을 꿰찼다. 김고은이 독립군 정보원 설희를 연기한다. 원작에도 있는 캐릭터로 가상의 인물이다.

복제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서복’도 영화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죽음을 앞둔 전직 정보국 요원(공유)과 영생의 비밀을 담은 인류 최초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이 여러 세력에 쫓기며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순제작비 약 160억 원이다.

‘강철비’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의 신작 ‘정상회담’은 정상회담 중 남북한, 미국 지도자가 북한 쿠데타 세력에 납치돼 핵잠수함에 감금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우성, 곽도원, 유연석이 출연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청부살인 미션과 관련한 한 남자의 사투를 그린다.

이 외에도 황정민과 현빈을 내세운 임순례 감독의 대작 ‘교섭’과 청부살인 미션을 다룬 이야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150억원~200억 원대 대작이 쏟아진다. 이달 중 촬영에 돌입하는 송중기 주연의 ‘보고타’도 제작비 150억 원에 달한다. 1990년대 콜롬비아로 이민을 떠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 글로벌시장 속 관객 눈높이↑..중·저예산 영화 상생해야

영화 '백두산' 스틸./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처럼 수많은 제작비를 들인 한국영화들이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글로벌 시장 속 관객들의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중견 영화 제작사 대표는 “일반 관객들은 할리우드영화나 우리영화를 똑같은 영화 한편으로 생각한다”며 “할리우드 제작비에는 못 따라가기는 하지만 사이즈를 크게 함으로써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하는 것이다. 돈이 더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글로벌 시장 안에서 관객들의 눈높이가 굉장히 높아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CG가 완벽한 작품들을 보고 싶은 욕망들이 기본적으로 있다. 볼거리를 감안하고 봐주지 않는 상황이다. 제대로 뭔가 만들어내지 않으면 허술하다는 반응이 바로 나오니 제작비도 올라간다”고 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수직계열화 구조가 규모가 큰 대작들에 힘을 실어주며 ‘천만영화’가 배출되기도 한다. 정덕현 평론가는 “극장을 찾는 인구가 늘어난 상태에서 극장들이 일제히 큰 영화를 몰아주기 때문에 이 정도 제작비의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영화시장은 점점 글로벌 시장에 입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 발을 들이면 제작비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평론가는 “‘기생충’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지만 사실 이 영화에 들어간 비용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한국영화가 글로벌하게 알려지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소비층이 생기며 제작규모가 더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대작영화들이 볼거리에 치중함에 따라 스토리나 완성도 면에서는 허술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 평론가는 “기본적인 흥행공식이 있는 대작을 극장에서 제대로 걸어주기 때문에 수익은 나온다”며 “그러나 작품으로서 가치를 갖기는 어려울 수 있다. 제작규모가 커지는 것과 한국영화 전반의 질을 높여주는 건 별개다”라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건 대작영화와 중·저예산 영화의 상생이다. 오락성 대작영화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영화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 평론가는 “다양한 영화, 중형급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그런 걸 마련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제작사 대표 역시 “투자배급사들은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말을 쓰겠지만 자칫 하다가는 다양한 영화가 사라질 수 있다. 스릴러, 호러 등 다양한 장르가 있어야 하지 않나”라며 “중·소형 영화가 잘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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