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진영] 이렇게 보내기엔 아쉽다. 짝사랑 하는 마음을 귀엽게 담은 곡 ‘오빠야’(2015년 발표)로 최근 차트를 ‘역주행’한 어쿠스틱 듀오 신현희와 김루트 이야기다. 23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오빠야’는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 20위를 점유하고 있다.

역주행은 온라인 스트리밍 방송 서비스인 아프리카TV에서 시작됐다. 지난 1월 한 BJ가 생방송에서 ‘오빠야’를 들으며 애교 있는 리액션을 하면서부터다. 이 영상은 SNS에 금방 퍼져나갔고 이런 관심이 ‘오빠야’의 원곡자인 신현희와 김루트에게까지 이어졌다. 인기에 힘입어 신현희와 김루트는 SBS, KBS2, Mnet 등 여러 채널의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뿐만 아니라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하는 KBS2 수목극 ‘김과장’의 OST에도 참여했다.

‘오빠야’는 한 연상의 남자를 좋아하게 된 여성 화자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오빠야’라는 사투리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라는 반복적인 후렴구가 짝사랑 노래이지만 듣는 이들을 신나게 한다.

‘오빠야’ 열풍은 현상처럼 퍼졌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오빠야’에 맞춰 리액션을 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스타들도 곧 동참했다. 멜로디데이는 지난달 말 일찌감치 ‘바니걸’로 변신, ‘오빠야’ 가사에 맞춰 ‘오빠야 놀이’를 했다. 브레이브 걸스의 하윤도 22일 공식 유튜브 및 SNS 채널에 ‘오빠야’ 리액션 영상을 게재하며 열풍에 합류했다.

‘오빠야’의 뮤직 비디오는 60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유명 인디 가수들이 뮤직 비디오로 1만 건에서 10만 건 사이의 조회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미뤄 봤을 때 이는 대단한 성과다. ‘역주행’ 열풍이 불기 전 약 2년 동안 30만 건의 조회수에 그쳤던 뮤직 비디오가 약 두 달 만에 20배가 넘는 조회수를 달성했다. 인디 밴드로서 이례적인 흥행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신현희와 김루트를 단지 ‘현상’으로만 설명하긴 아쉽다. ‘오빠야’로 유명세를 얻은 것은 확실하지만 이 한 곡이 신현희와 김루트의 진가를 모두 알려 주진 못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데뷔 곡은 ‘캡송’(2014년 발표)이다. 모자(cap)와 노래(song)를 합친 제목인데 신날 때 하는 감탄사 ‘캡숑’을 연상시키는 언어유희가 돋보인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모자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집을 나서기 전 ‘오늘은 모자를 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결국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모자 가게 아저씨에게 이끌려 모자를 사고 만다. 화자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 다짐 다 어디로 갔나’라며 반성한다.

지난해 7월 롱디와 함께 부른 ‘참지마요’는 ‘캡송’에서 하려는 말이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나의 기억에 우리 아빠가 해 준 묵직한 돌직구 한 마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위해 하고 싶은 걸 참지 마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시종일관 ‘후회해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일을 참지 말라’고 외친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지난해 말 발매된 ‘다이하드’는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여건 때문에 하지 못 하고 있는 이들에게 상상의 세계를 열어 준다. ‘만약에 목숨이 두 개라면 무얼 가장 먼저 하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서다.

상업적으로 설계 되지 않은 인디 신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시대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인디 뮤지션들은 음악을 ‘팔기 위해’ 포장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음악에 담아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 쉽지 않다’는 명제가 당연해진 시대에 여러 청춘의 고단함을 노래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앞서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런 지질한 청춘을 우습게 보는 이들을 향해 도리어 ‘나는 별일 없이 산다’(‘별일 없이 산다’ 중)고 신명 나게 외치는 해학을 보여 줬다. 남들이 ‘지질하다’, ‘별 볼 일 없다’ 비난할 때, 이에 굳이 맞서지 않고 ‘맞아, 난 별 일 없이 사는 지질한 사람이야’라며 웃어 넘기는 여유로운 태도를 보여 준 것이다. MBC ‘무한도전’ 출연을 계기로 새롭게 떠오른 인디밴드 혁오는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끝 없이 고민하는 자아성찰적 노래를 주로 한다. 대표곡 ‘위잉위잉’에서 혁오는 ‘사랑도 끼리끼리 하는 거라 믿는 나는 좀처럼 두근두근 거릴 일이 전혀 없죠’라고 자조하며, ‘차라리 듣지 못 한 편이 내겐 좋을 거야’라는 소극적 태도를 보여 준다. 힘든 세상에서 나서서 뭐라 하는 것 보다는 성찰하고 반성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들과 비교해 신현희와 김루트의 음악 색깔 역시 확고하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사이의 방황을 ‘모자’라는 소재를 이용해 가볍게 표현한 ‘캡송’부터 ‘내일 당장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오늘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참지마요’, 좋아하는 녹차라떼를 사 먹을 돈도 없지만 ‘편한 웃음 편한 시간 편한 이 순간에 나는 살아 있다’고 외치는 ‘편한노래’까지. 신현희와 김루트는 힘겨운 청춘을 위트 있게 응원해 왔다. 이 유쾌한 뮤지션이 ‘오빠야’ 한 곡으로 잊히긴 아쉬운 이유다.

사진=문화인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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